국회 정개특위(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 남인순)가 이른바 “정치개혁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다양성이 반영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29.9%)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정책 국회로 발전하기 위해’(23.4%), ‘대결정치를 해소하기 위해’(21.7%)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위 정개특위 발표를 받아서 신문(미디어)에서는 “국민 72.4%, 국민 다양성 반영 위해 ...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청년투데이, 2023.2.14.) 등 표제가 달린 기사를 냈다. 문제는 ‘72.4%’, ‘국민 다양성 반영’, ‘선거제도 개편’ 등의 표현이 선거제도 개편은 ‘정당하다’라는 색깔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선동성 기사는 국회의 의지와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국민 72.4%가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으나,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냥 도매금으로 72.4%라고 뭉뚱그릴 일이 아니다.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그 실체가 없으므로,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개념 자체가 피상적이고 모호하다. 또 선거제도만 개편하면 ‘국민 다양성’이 반영될 것처럼 표제를 달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개편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지금보다 더 다양성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개특위에서 제시한 설문 문항은 편파적이고 경향성이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국회에서 얻고 싶은 대답을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것이다. 그 어느 항목을 선택하든 선거제도 개편의 긍정적인 점만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문 문항에 깔린 치명적 오류는 선거제도 개편이 어떤 규모,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구체적인 안이 전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응답자는 그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말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져 구체적 내용이 나오는 경우, 그것이 이들의 희망 사항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설문 문항은 허황하다. 그런데 이 같은 허황한 조사의 결과로 얻어낸 “국민 70% 이상이 선거제도 개편에 찬성한다”는 결과는 거꾸로 국회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은 앞으로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편하게 될지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의견을 제시하거나 간여할 수도 없는 국민을 ‘여론’이라는 명분으로 볼모로 잡아서 국회가 원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려는 심보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한 이유 관련 설문조사 문항은, ‘국민의 다양성이 반영되는 국회’, ‘정책 국회로 발전’, ‘대결정치를 해소’ 등으로 이 세 가지는 다 선거제도 개편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묻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첫째. 필요한 이유를 묻는 경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물어야 하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물어야 한다. 그러면 “국회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편해봤자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것이 될 것이므로,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라는 항목도 넣어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겠다. 요즈음 국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고 또 다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냥 선거제도 개편 찬반 여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개편하기를 원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또 그냥 비례대표 늘릴까 여부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 비례대표 등에 대한 정당공천제도 찬반을 묻는 문항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국민 민초가 직접 순서를 정하는 개방형 비례대표제도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국회 설문조사에 그런 항목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야 막론하고 정당에서 공천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에서 하는 설문조사는 원하지 않는 항목은 아예 빼버리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으로 설문 문항을 만들어 돌리는 것이었다.
실로 지역구나 비례대표를 막론하고, 정당공천제도를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공천에 영향을 주는 당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국힘당에서는 사활을 건 잡탕 싸움이 일고, 민주당에서는 대놓고 당대표 사퇴(조응천 등)를 종용하거나, 공천권을 내놓으라고 으름장(박영선)을 놓고 있다. 이렇듯 부작용 심한 정당공천제도를 두고 국회는 그것을 개방형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온통 진흙탕에 굴러도 권력은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부터 천지개벽하듯 낡은 소선거구제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고 요란을 떨었다. 윤석열부터 시작하여 국힘당, 민주당 소속 국회의장 김진표 등을 위시하여 민주당도 함께 합세하여 떼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설문조사에서, 한 선거구에서 ‘소선거구제’가 한국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37.0%)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36.1%)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또 선거구의 크기에 대한 선호도 역시 한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선거제도’(40.5%)와 ‘2명 이상을 뽑는 제도’ (2~4명 39.7%, 5명 이상 4.0%)에 대한 선호도가 대등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국회는 국회가 원하는 대로 선거제도 개편을 하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이 원하고 여야가 공히 원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밀고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70% 이상이 개편에 찬성을 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편승하여 추진한 선거제도 개편이 정작 여론에 반하는 중대선거구제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고, 현재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보면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그 개연성이 더 농후하다고 할 수도 있다.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이지 구체적 내용을 전혀 모르는 국민 민초에게 찬반을 대답하라는 것은 사람을 보여주지도 않고 무조건 혼인에 찬반을 표하라는 것과 같이 꺼벙하다. 선거제도 개편의 긍정적 효과로 떠들어대는 내용도 서로 모순된다. 한편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이 “다양성 반영”을 위한 것, 다른 한편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지역성 극복” 혹은 “대결정치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지역성 극복” 혹은 “대결정치 해소”는 지역 혹은 정당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자의 “다양성 반영”과 정합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꺼벙하고, 왜곡, 모순, 경향성을 가진 여론조사 결과로서, “국민 70% 이상 찬성”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회는 그들이 기획한 대로 선거제도 개편을 밀어붙일 작정이다. “국민 70% 이상 찬성”이라는 빌미를 만들어준 국민 민초는 입 봉하고 손발 다 묶이고 칼자루 뺏긴 채 하릴없다.
현재로서 대한민국 국회는 민의를 반영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고, 민초를 예속하고 지배하는 곳이다. 민초가 국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두 가지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그것은 의원 선거제도 개편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서, 주권자인 민초와 대의제 위정자 간 관계 재정립을 위한 것이다.
첫째, 의제를 국회가 먼저 제안하고 국민의 여론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국민 민초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경우 국회가 원하지 않는 것도 주권자 민초가 원하는 경우 제도 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 예로 폐쇄적 정당공천제를 폐기하고 국민 민초가 의원의 순서를 정하는 개방형 제도로 바꾸자는 것을 공론화할 수 있겠다.
둘째, 하고한 날 민초는 여론조사 들러리만 서고 결정은 국회에서 멋대로 할 것이 아니라, 민초가 원하는 경우 국민투표로 직접 결정해야 한다. 국회는 국민 민초의 관리하에 있어야 하고, 민의에 어긋나게 결정한 것은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국민투표는 하향식(플레비사이트 plebicite, 위애서 제안하여 국민은 투표만 하는 것)뿐 아니라 상향식(레퍼랜덤 referendum, 국민 민초가 숙의를 통해 안건 제안)이 필히 전제되어야 한다.
▲ 최자영 편집인/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전 한국서양역사문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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