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대표 이재명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 139, 반대 138로 부결되었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가결 정족수는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데, 이번 경우 297명 출석에 가결 필요 찬성표 수는 149표인데, 10표가 부족한 139표가 나왔으므로, 부결되었다.
이런 결과를 두고 갖가지 성토가 무성하다. 친명계(이재명 파)에서는 민주당 내 ‘이탈표’, ‘배반’ 등으로 비명계(이재명 반대파)를 비난하고, 이탈자의 다음 총선 낙선운동 전개하며, 나아가 일부에서는 “전 당원 투표로 이재명 재신임 묻자” 등으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반면, 비명계에서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 운운하면서 갈등의 원인을 이재명 개인 탓으로 돌리고, 그가 당대표직을 내려놓을 뿐 아니라 구속되어 그 정치적 생명이 다하기를 내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법리스크 이재명 결단하라”(한겨레, 23.2.28), “벚꽃 피기 전 교도소 보내자”(김재원 의원), “친명·비명 갈등 증폭… 與(여당) 방탄막 벗겨지는 건 시간문제”, “아등바등 하는 이재명 한심스럽고 서글픈 인생, 조작된 이재명 인생도 얼마 안 남았다” 등의 야유가 그러하다.
이재명 자신은 앞에서 맞는 화살은 수도 없이 맞아 봤지만, 이번에 등에 꽂힌 칼로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술도 한 잔 했다고 한다. 그 뜻은 이른바 ‘반란표’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바보다. 그런 ‘반란’의 징후는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박영선이 대놓고 공천권 내놓으라고 하고, 조응천, 조정훈 등이 ‘사법 리스크’ 운운하고 당대표직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왜 이재명은 ‘압도적 부결’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의도에서 익숙한 ‘짬짜미(영어로는 ‘딜’)’ 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짬짜미는 여야 간뿐 아니라 민주당 내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에도 가능하다. 여야 간에는 이재명 측근 정성호가 일찌감치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들 모임”을 주도하고, 또 박홍근 원내대표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힘당 김도읍에게 널름 내주었다. 여야 간 갈등을 가능한 한 피하자는 뜻이다.
그 같이 민주당 내부에서도 짬짜미(딜)를 했을 것이다. 그 징후도 있다. “이제는 이견을 수면 위로 올려 민주당답게 얘기해봐야 한다”(검찰총장 했던 의원 박범계), “숨어서 작당 모의, 저열하고 비겁”(안민석 의원), “앞에선 동지처럼 웃고 뒤에선 검찰독재에 굴복”(양이원영 의원) 등의 성토가 그런 것이다. 구속 여부를 두고 투표하기 직전, 비명계 의원들이 마치 구속 반대에 표를 던질 것처럼 친명계에 미소를 지었고, 또 그 미소를 보고 친명계가 압도적 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계파 갈등 문제의 핵심은 ‘미소’나 ‘반란’이 아니고 ‘공천권 짬짜미(딜)’이다. 표결 전날 이낙연 계 의원(설훈 등으로 회자한다) 쪽에서 공천권 딜을 요구해왔는데 이재명이 거절했다고 하고, 1표 차이로 부결된 다음 민주당 의원 이상민은 “엎드리지 않으면 다음엔 무조건 (구속 찬성쪽) 가결”, 이번에 드러난 찬성표는 “빙산의 일각” 등의 발언을 한 것이 그러하다.
압도적 부결 아니라는 거 미리 못 보고 어떻게 정치를 하나? 공천권을 둘러싼 내부 파열음은 민주당, 국힘당을 가리지 않으며, 국회 자체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렇듯 문제는 국회 자체가 가진 집중적 권력구조에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회가 짐짓 엉뚱한 데서 해법을 찾는 척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이재명 개인을 ‘사법 리스크’ 유발자로 몰면서 그 ‘결단’(당대표직 사임)을 촉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공화국 탓하고 윤석열, 한동훈을 욕하는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 한동훈만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검찰이 이재명에 대해 끝없이 구속영장 청구할 때, 이른바 민주당 수박들은 속으로 미소를 짓고 검찰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그런 화답에 대해 한동훈도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그러 점에서 검찰과 민주당 수박들이 공모하고 있다.
“민주당 이탈 31표 사실상 정계 개편 시작된 것”(서울의소리 사설), 혹은 “38명 내외 민주당 의원이 ‘해당행위’ 했다” 등의 말이 회자한다. 그 정계 개편은 시종일관 공천권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며, 그 ‘해당행위’ 하는 것으로 매도당하는 쪽에서 보면, 오히려 ‘사법 리스크’를 배태한 이재명이 해당행위를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사법 리스크가 아니다.
“이낙연, 검사독재 정권 만든 일등공신”, “‘수박 찍어내기’로 도배된 민주당 청원게시판” 등의 표현은 문제의 핵심과 함께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이 그릇된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낙연이 당대표 되고 싶어 독재검찰에 이재명을 팔아먹었다면, 지금 이낙연계 의원은 공천권을 차지하기 위해 독재검찰과 짬짜미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낙연계 수박을 찍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당 내 친명계를 중심으로 한 독재와 획일화의 위험을 내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 반대가 1표 차이로 가결된 데 대해 서운했던 이재명은 “마음에 빚진 게 없어 ‘소신껏’ 공천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 말이 갖는 함의는 어마무시하다. 첫째, 여의도 문화가 가진 ‘짬짜미’ 관행, 둘째, 국회의 독재적 권력집중 구조를 적나라하게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짬짜미’ 관행 관련하여, 만일 이번 표결에서 구속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이재명은 마음에 빚진 게 있어 ‘소신껏’ 공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역(逆)추론이 가능하다. ‘소신껏’ 공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낙연계와 짬짜미했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낙연계와 짬짜미하게 되면, 결국 이재명에게 바라던 다소간의 신선한 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엎드리지 않으면 다음엔 무조건 (구속 찬성 쪽으로) 가결”, 이번에 드러난 찬성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등 의원 이상민이 한 발언은 이재명에게 굽히고 짬짜미하라는 뜻을 종용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여의도’스럽다. 그런 점에서 그 뻔뻔함이 적나라하다. 누구에게 또 무엇 때문에 “엎드리라”고 한 것인지? ‘누구’란 국민 민초일 리는 없으니 표결권을 가진 의원들을 뜻하는 것이고. ‘무엇’의 핵심은 공천권인 것이 분명하다.
둘째, 국회의 독재적 권력집중 구조 관련하여, 이재명이 소신껏 공천권을 행사한다고 한 것은 자신의 뜻을 공천에서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다. 개인의 뜻이 반영된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 의지가 아니라 권력구조적으로 그런 것이 허용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재명 자신이 현재 여의도 국회 문화가 당대표에게 권력집중 되어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이것은 이재명 자신이 본질적으로 독재적 심성(멘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재명이 권력구조적 독재를 지향하는 사례는 또 있다. 윤석열을 보고 “대통령이 권력을 가지고 야당을 탄압하면 그게 깡패지 대통령이냐”고 한 발언이 그러하다. 이재명은 대통령의 권한이 야당을 탄압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재명의 한계는 그렇게 잘못 이용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딱 윤석열을 닮았다. 검찰에 몸담았던 윤석열도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면 그게 깡패지 검찰이냐” 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검찰이 권력을 남용해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두려 하지 않았던 점에서 독재적이고, 그런 점에서 이재명과 정확하게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검찰이 악마가 되고, 대통령이 깡패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권력구조 자체에 있다. 그 자체가 틀린 것이다. 민주에서 국민 민초는 누군가의 처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모든 권력이 원천으로서 대의 권력자를 감시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윤석열이 아닌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민생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고한 날 윤석열을 향해 야당 탄압하지 말고 민생에 힘쓰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소신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개인 주관의 절대시, 민주가 아닌 개발독재적 사고, 독선이라는 점, 그리고 그 같은 재량권이 무한하게 욕심을 자극하여 오늘의 질곡의 발생원인이 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독재적 권력집중 구조에서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고, 그 권력은 당대표를 중심으로 한 소수에 집중되어 있고, 의원들은 그 소수에 의해 공천받기 위해 숨죽이고 있고, 그래서 국회는 자유, 민주가 아니라 검찰조직과 같이 상명하복의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소신껏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재명의 발언은 상징적이다. 그 독재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금 민주당은 내홍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정당 공천권 문제를 둘러싼 내홍에서 국힘당도 예외가 아니다. “비윤계(윤석열 반대파) 살생부”, “비윤계가 당대표 되면 윤석열 측이 다른 당을 만들어 분리해 나올 것이다”(신평) 등의 말이 회자하는 것이 그러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블랙홀’로 빠져드는 국회를 구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권력욕심을 버리면 된다. 그것은 국회에서 가진 정당 공천권 자체를 없애고, 그것을 개방하여 국민 민초가 직접 의원 선호도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재명 측 전석진 변호사는 “검사들이 죄가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검사를 처벌해야 한다”고 결론지었고, 민병덕 의원은 ‘국회계단 길거리 인터뷰’에서 검사독재 규탄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검사 몇 명 처벌하고, 또 검사만 규탄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에 대한 비명계의 공격은 정당 공천권을 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구속 여부 표결에서 민주당 이탈표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대처와 구호는 정순신 아들 학폭 문제를 인사검증 문제로 축소하는 것과 똑같다. 인사검증 문제를 부각하는 점에서 여야가 다 같다. 여기서도 여야는 짬짜미를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 파악에서 의원 등 위정자는 정순신 아들보다 훨 못하다. 똘똘한 정순신 아들은 “검사는 뇌물 받는 직업”, “판사랑 친하면 무조건 무죄 나온다”는 점 등을 꿰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 판사 등 사법기관이 권력구조적으로 가진 문제를 단순한 인사검증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그 정치, 사회적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인사검증 잘못했다고 한동훈 사퇴하라고 하고, 아들 학폭 문제로 정순신 개인을 나무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순신, 한동훈 없어진다고 검찰 뇌물 받는 관행, 판사하고 친하면 무조건 무죄 나오는 엉터리 재판하는 관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야, 위정자와 민초를 가리지 않고 만연한 독재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한편으로 윤석열의 조선책임론과 한일협업론은 민초의 감정을 무시한 독재를 하는 것이고, 국회의장 김진표의 의원정수 확대론은 민초의 여론을 무시하고 독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의를 살피지 않고 자기 ‘소신’에 따라서만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독재의 전형이다. 다른 한편, 민초는 윤석열, 한동훈을 욕하는 데 몰두할 뿐, 정작 검찰공화국과 국회 등 정부 기관의 집중적 권력구조가 낳는 질곡을 간과하고 있다.
▲최자영 편집인/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전 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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