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모의 이슈진단] 홍범도 장군의 업적은 독립운동 자체로 평가해야

서울에 홍범도 장군 기념관 설립 추진을 고민해 봐도 좋을 듯

열린시민뉴스 | 입력 : 2023/10/06 [08:00]

▲ 홍범도 장군 사진    

육군사관학교(약칭,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는 문제로 국정감사에서 여야 논쟁이 있고, 육사 앞에서는 홍범도 장군 흉상철거를 반대 또는 찬성하는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독립군 흉상철거와 관련된 논쟁이 확산하자, KBS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9월 25~27일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과는 별개로 소련 공산당 이력 등을 이유로 들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할 방침인데 이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3.7%로 조사됐다. 반면 동의한다는 답변은 26.1%로 나타나 국민 상당수는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 흉상철거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논란 과정에서 본인은 역사가는 아니지만, 기존 자료를 가지고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독립군 사령관 홍범도의 일생에 대하여

 

홍범도 장군은 1868827일 평양에서 빈농이었던 홍윤식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머니가 일주일 만에 사망하자 아버지가 머슴살이하며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길렀으며, 홍범도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마저 사망하였다. 그 후 머슴살이, 군인, 공장취직, 절의 상좌승 등을 하였고, 이옥녀 씨와 결혼한 후에 사냥꾼 생활을 하였다. 189511월 을미의병이 일어나던 시기에 강원도 회양 군에게서 포수였던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고, 철령에서 일본군 1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후 만주로 망명하여 장백현 일대에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19년 간도 국민회의 대한독립군 사령관이 되었고 이후 국내로 들어와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후에 독립군의 통합 운동을 벌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김좌진과 함께 부총재가 되었다. 1920년 일본군과 3일간의 봉오동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며 최대의 전과를 올렸고, 이어서 청산리 대첩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1922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공산당(코민테른) 국제대회에 국제공산당이 지휘한 원동(遠東)의 식민지·반식민지 혁명가로 참석한다. 1927년 소련의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였으나, 1937년 중앙아시아인 키질로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고, 그는 거기서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고려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1943년에 향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한 후에 키질로르다의 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93년에 북한은 홍범도가 평양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봉환 시도를 하였지만, 고려인 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적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으로 2021815일에 대한민국으로 유해가 봉환되어 8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서훈

 

홍범도 장군은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 대해 언론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은 1962224일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208명의 독립유공자 포상 소식을 알리면서 당시 정부(윤보선 대통령-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체제)"<조선독립혈사> 12권의 심의자료와 국시 위배 정치적 과오 납북 변절 해방 후 월남치 않은 자 확인할 만한 기록이 없는 경우 등 6개 제외 규정을 준용해 엄선했다"고 보도했다. 홍범도 장군은 '6개 제외 규정'에 해당하지 않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홍범도 장군의 육사 내 흉상 설치 과정에 대하여

 

홍범도 장군 등 육사에 설치된 독립군광복군들의 흉상 설치 과정을 살펴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인 201831절을 맞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을 설치했는데, 당시 육사 측은 흉상의 재료는 우리 군 장병들이 사용한 5.56소총 5만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 만든 것이다. 독립운동 당시 총과 실탄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음에도 봉오동청산리 대첩 등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며 조국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선배 전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탄피를 재료로 흉상을 설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육사는 2018년 설치한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육사는 2023824일 독립기념관 관계자를 통해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 또는 보관이 가능한지 검토 요청을 했고, 825일 언론사에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에 있다고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국방부 장관은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육사 내 독립군 흉상철거를 추진하는 이유를 밝혀 문제가 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인가 빨치산인가

 

1962년 정부가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70년 동안 홍범도 장군을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군으로 영웅으로 알고 있었다.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일제와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다. 홍범도는 항상 부하와 주민, 독립군을 후원하는 민중과 혼연일체가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부하와 동포들로부터 절대적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는 일화가 널리 전한다. 특히 1907년 말에서 이듬해 말까지 함경도 일대에서 주민들의 절대적 성원을 바탕으로 치열한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여 수십 차례 전투를 치르며 일본 군경에 큰 타격을 주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벌어진 1920년 전후 독립전쟁 때도 치고 빠지는 기습적인 유격전 방식으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홍범도는 육사나 우리 군의 전범, 특히 게릴라전의 한 롤모델로서 상찬되고 깊이 연구 교육할 필요가 있는 영웅적 인물이다.>라는 것이다.

 

이울러, <홍범도 장군처럼 오랫동안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넘나들며 초지일관 항일투쟁을 벌인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물론 북한, 중국 옌볜(옛 북간도), 그리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인들까지 모두 그를 추앙하고 있다. 그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주요 무대였던 북한 함경도 지방과 중국 옌볜,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그의 활동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민담과 민요,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해 전해 내려오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70년 동안 학교에서 또는 영상으로 홍범도 장군을 자랑스러운 독립군으로 인정해 놓고 이제 와, 빨치산 또는 공산주의자를 운운하며 육사에서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하니 황당한 마음이다.

 

국어사전에 서술된 빨치산의 뜻은 <적의 배후에서 통신ㆍ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를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비정규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전후에 각지에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를 이르는 말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공산주의를 동조하며, 남한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독립이 이루어지기 2년 전인 1943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는데, 홍범도 장군에게 빨치산이라고 규정하면서 배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홍범도 장군이 활동을 하던 시기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제국주의 정책에 의해 식민지화 된 시기로, 독립적인 나라가 없어 주변 국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는 중국, 소련, 미국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인데, 독립운동가들이 그 상황에 맞춰 독립운동을 한 것은 하등의 문제도 될 것 같지 않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은 했지만 소련 공산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일본군에게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이를 문제 삼을 일이 아닌 것 같다. 1962년 정부가 208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하는 과정에서 심의원칙에서 세운 국시 위배 정치적 과오 납북 변절 해방 후 월남치 않은 자 확인할 만한 기록이 없는 경우 등 6개 제외 규정은 타당하고 정당한 원칙이고, 이 원칙에 홍범도 장군은 벗어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현 정부는 대국적이지 못한 태도를 지양해야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중국 여순 형무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19091026일 만주의 하얼빈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을 암살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받고 1910326일 오전 10시에 교수형으로 사망한 곳이다. 중국은 이 형무소를 기념관처럼 보수하였고, 여러 사람을 두어 깨끗한 관광지로 관리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중국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안중근 의사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항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을 존경하고, 그에 맞는 예우를 해주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출생국가가 중국과 이념이 다른 나라라고 하여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기리는 대국다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 중국 여순 형무소(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장소)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며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신문에서 일본에 있는 여러 정당 중에서 지지율은 낮지만, 공산주의당도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일본에 공산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이 분단되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범죄시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경우, 우리나라가 일제에 침탈당하여 독립된 나라가 없었고, 독립운동을 위해 소련에서 살 수밖에 없었으며, 살아서 귀국하려고 죽지 않고 버티며 살면서, 죽기 전에 독립된 우리나라에 귀국하고 싶어 했을 홍범도 장군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리다.

 

홍범도 장군의 기념관을 서울에 만들었으면 한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여야 간에 다투고 있고,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육사가 독립군 흉상 등을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육사 내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 등을 보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등을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천안으로 옮기는 것보다 효창공원이나 서울 어딘가에 기념관을 설립하면 좋겠다. 서울시 시의원들이 예산을 편성하여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들의 기념관 설립을 추진할 수도 있고, 재정이 부족하면 홍범도 장군 등을 기리고 싶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기념관을 설립해도 좋을 것 같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이나 독립군 등에 대해 대인배(大人輩)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귀를 닫고 있을 것 같아서이다.

 

▲ 정의연대 인권 상임이사 (약학사 / 법학사 /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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